쓰지 하쓰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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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쓰지 하쓰히코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이다. 1984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1995년까지 선수로 활약했으며, 1993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 해설가, 평론가로 활동했으며,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을 역임하며 2018년과 2019년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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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하쓰히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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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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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쓰지 하쓰히코 |
로마자 표기 | Tsuji Hatsuhiko |
출생일 | 1958년 10월 24일 |
출생지 | 사가현 오기시 |
신장 | 182cm |
체중 | 78kg |
포지션 | 내야수 / 감독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프로 경력 | |
드래프트 | 1983년 드래프트 2위 |
선수 경력 | 일본통운 경식 야구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984년 ~ 1995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1996년 ~ 1999년) |
감독/코치 경력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00년 ~ 2001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02년 ~ 2004년) 주니치 드래건스 (2007년 ~ 2011년, 2014년 ~ 2016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7년 ~ 2022년) |
첫 출장 | 1984년 4월 3일 |
마지막 출장 | 1999년 10월 14일 (은퇴 경기) |
수상 내역 | |
올스타 | 9회 (1986년, 1988년 ~ 1994년, 1996년) |
베스트 나인 | 5회 (1986년, 1989년, 1991년 ~ 1993년) |
골든 글러브 | 8회 (1986년, 1988년 ~ 1994년) |
퍼시픽 리그 수위 타자 | 1993년 |
NPB 통산 기록 (1999년 시즌 종료 기준) | |
타율 | 0.282 |
안타 | 1462 |
홈런 | 56 |
타점 | 510 |
도루 | 242 |
2. 선수 경력
### 프로 입단 전
쓰지 하쓰히코는 세이부의 전신인 니시테쓰 라이온스의 팬으로,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종종 사가에서 니시테쓰의 홈구장인 후쿠오카의 헤이와다이 야구장에 경기를 보러 갔다.[71] 사가 시립 쇼에이 중학교 졸업 당시 161cm의 작은 체구였으나, 사가히가시 고등학교에서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연습에 전념했다.[71] 1975년 추계 규슈 대회 준준결승에 진출했지만 히타린코 고등학교(오이타현)에게 패했다.
이후 신장이 182cm까지 성장하여 닛폰 통운에 입사, 우라와 사회인 야구부에서 활약했다. 높은 수준에 심적 부담을 느꼈지만, 곧 팀의 중심 타자로 기용되었고 수비에서는 3루수를 맡았다.[72] 1981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가토 마사지를 중심으로 출전하여 준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도시바의 구로가미 요시히로에게 막혀 패했다.[72] 1982년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야마하 발동기에게 패했다.[73] 그러나 이 대회에서 우수 선수로 선정되며 타격상도 수상했다.
1983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세이부 라이온스로부터 2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당시 세이부의 관리부장이었던 네모토 리쿠오는 쓰지의 신체 능력, 1년간 40차례의 도루 시도에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주루 센스, 야구에 대한 열의를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74] 쓰지는 1983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 1차전에서 2루수 겸 1번 타자로 출전했는데, 이를 본 스카우트들이 대형 2루수로서의 소질을 알아보았다.[75] 사회인 시절 뚜렷한 활약은 없었기에 상위 지명에 놀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쓰지 하쓰히코는 1984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직후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으로부터 혹독한 펑고를 받으며 수비를 단련받았고,[74] 신인임에도 41경기에 출전하여 3루수(29경기)와 2루수(4경기)로 활약했다. 그해 오프에 주전 2루수였던 야마자키 히로유키가 은퇴하면서, 쓰지는 2루수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75]
1985년에는 110경기에 출전하며 90경기에서 2루수로 뛰었다.[75] 1985년 일본 시리즈 2차전에서는 스퀴즈 플레이를 시도했으나 랜디 바스의 호수비로 실패했다. 시즌 후에는 궈타이위안과 함께 연습하러 가던 중 추돌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지만,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76]
1986년에는 전 경기에 2루수로 출전하여 규정 타석을 채웠고, 골든 글러브상과 베스트 나인을 동시에 수상했다. 1986년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는 한 이닝에 2개의 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했다.[77]
1987년에는 시범경기에서 나카다 요시히로의 투구에 맞아 오른쪽 집게 손가락이 개방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51경기 출전에 그쳤다.[78] 1987년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는 8회말 안타로 출루한 후, 워렌 크로마티의 느슨한 송구와 가와이 마사히로의 실책을 틈타 홈을 밟아 득점에 성공했다. 9회초에는 울고 있던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세이부의 선수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연봉이 4,300만 엔(추정)으로 인상되었다.[79] 그해부터 7년 연속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고, 1990년까지 3년 연속 전 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1989년에는 사회인 출신 최초로 퍼시픽 리그에서 3할 타율을 달성했다.
1990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부터 3경기 연속 1번 타자로 출전하여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80]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1년에는 연봉이 1억 엔을 돌파했다. 1992년 일본 시리즈 최종전에서는 스기우라 도루의 강한 땅볼 타구를 잡아 히로사와 가쓰미를 홈에서 아웃시키며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1993년에는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타율 0.319를 기록하며 수위 타자를 차지했고, 연봉은 1억 7,200만 엔(추정)으로 인상되었다.[83]
1995년에는 허리 통증과 팀의 세대 교체 정책으로 인해 방출 통보를 받았다. 현역 연장을 희망하며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이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다.[86]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쓰지 하쓰히코는 1996년 이적 후 스프링 캠프에서 젊은 선수들과 같은 훈련을 소화하고 시범 경기에 출전했지만, 피로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86] 5월 10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맹타상을 기록하며 복귀한 후, 6월 상순에는 4할에 가까운 타율로 1996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 출전했다.[86] 후반기에는 타율이 하락했지만, 개인 최고 타율 0.333을 기록했다. 그러나 알론조 파웰에게 7리 차이로 뒤져 센트럴·퍼시픽 양대 리그 수위 타자 달성에는 실패했다.
1997년에는 다시 수위 타자를 노렸지만, 체력 저하로 하향세를 보였다. 선발 출전 기회가 줄면서 대타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나바 아쓰노리에게 타격 이론을, 미야모토 신야에게 수비 조언을 하는 등 젊은 선수들을 지원했다.[86] 1998년에는 1루수로 4경기에 출전하며 12년 만에 2루수 외 포지션을 소화했고, 타율 0.304를 기록하며 대타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99년에는 스프링 캠프에서 왼쪽 어깨 부상을 당하고, 이후 왼쪽 옆구리와 허벅지 부상이 이어지면서 17경기 출전에 그쳤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23]
2. 1. 프로 입단 전
쓰지 하쓰히코는 세이부의 전신인 니시테쓰 라이온스의 팬으로,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종종 사가에서 니시테쓰의 홈구장인 후쿠오카의 헤이와다이 야구장에 경기를 보러 갔다. 사가 시립 쇼에이 중학교 졸업 당시 161cm의 작은 체구였으나, 사가히가시 고등학교에서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연습에 전념했다.[71] 1975년 추계 규슈 대회 준준결승에 진출했지만 히타린코 고등학교(오이타현)에게 패했다.이후 신장이 182cm까지 성장하여 닛폰 통운에 입사, 우라와 사회인 야구부에서 활약했다. 높은 수준에 심적 부담을 느꼈지만, 곧 팀의 중심 타자로 기용되었고 수비에서는 3루수를 맡았다.[72] 1981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가토 마사지를 중심으로 출전하여 준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도시바의 구로가미 요시히로에게 막혀 패했다.[72] 1982년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야마하 발동기에게 패했다.[73] 그러나 이 대회에서 우수 선수로 선정되며 타격상도 수상했다.
1983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세이부 라이온스로부터 2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당시 세이부의 관리부장이었던 네모토 리쿠오는 쓰지의 신체 능력, 1년간 40차례의 도루 시도에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주루 센스, 야구에 대한 열의를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74] 쓰지는 1983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 1차전에서 2루수 겸 1번 타자로 출전했는데, 이를 본 스카우트들이 대형 2루수로서의 소질을 알아보았다.[75] 사회인 시절 뚜렷한 활약은 없었기에 상위 지명에 놀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2. 2.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쓰지 하쓰히코는 1984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직후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으로부터 혹독한 펑고를 받으며 수비를 단련받았고,[74] 신인임에도 41경기에 출전하여 3루수(29경기)와 2루수(4경기)로 활약했다. 그해 오프에 주전 2루수였던 야마자키 히로유키가 은퇴하면서, 쓰지는 2루수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75]1985년에는 110경기에 출전하며 90경기에서 2루수로 뛰었다.[75] 1985년 일본 시리즈 2차전에서는 스퀴즈 플레이를 시도했으나 랜디 바스의 호수비로 실패했다. 시즌 후에는 궈타이위안과 함께 연습하러 가던 중 추돌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지만,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76]
1986년에는 전 경기에 2루수로 출전하여 규정 타석을 채웠고, 골든 글러브상과 베스트 나인을 동시에 수상했다. 1986년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는 한 이닝에 2개의 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했다.[77]
1987년에는 시범경기에서 나카다 요시히로의 투구에 맞아 오른쪽 집게 손가락이 개방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51경기 출전에 그쳤다.[78] 1987년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는 8회말 안타로 출루한 후, 워렌 크로마티의 느슨한 송구와 가와이 마사히로의 실책을 틈타 홈을 밟아 득점에 성공했다. 9회초에는 울고 있던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세이부의 선수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연봉이 4,300만 엔(추정)으로 인상되었다.[79] 그해부터 7년 연속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고, 1990년까지 3년 연속 전 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1989년에는 사회인 출신 최초로 퍼시픽 리그에서 3할 타율을 달성했다.
1990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부터 3경기 연속 1번 타자로 출전하여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득점에 성공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80]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1년에는 연봉이 1억 엔을 돌파했다. 1992년 일본 시리즈 최종전에서는 스기우라 도루의 강한 땅볼 타구를 잡아 히로사와 가쓰미를 홈에서 아웃시키며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1993년에는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타율 0.319를 기록하며 수위 타자를 차지했고, 연봉은 1억 7,200만 엔(추정)으로 인상되었다.[83]
1995년에는 허리 통증과 팀의 세대 교체 정책으로 인해 방출 통보를 받았다. 현역 연장을 희망하며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이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다.[86]
2. 3.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쓰지 하쓰히코는 1996년 이적 후 스프링 캠프에서 젊은 선수들과 같은 훈련을 소화하고 시범 경기에 출전했지만, 피로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86] 5월 10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맹타상을 기록하며 복귀한 후, 6월 상순에는 4할에 가까운 타율로 1996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 출전했다.[86] 후반기에는 타율이 하락했지만, 개인 최고 타율 0.333을 기록했다. 그러나 알론조 파웰에게 7리 차이로 뒤져 센트럴·퍼시픽 양대 리그 수위 타자 달성에는 실패했다.1997년에는 다시 수위 타자를 노렸지만, 체력 저하로 하향세를 보였다. 선발 출전 기회가 줄면서 대타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나바 아쓰노리에게 타격 이론을, 미야모토 신야에게 수비 조언을 하는 등 젊은 선수들을 지원했다.[86] 1998년에는 1루수로 4경기에 출전하며 12년 만에 2루수 외 포지션을 소화했고, 타율 0.304를 기록하며 대타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99년에는 스프링 캠프에서 왼쪽 어깨 부상을 당하고, 이후 왼쪽 옆구리와 허벅지 부상이 이어지면서 17경기 출전에 그쳤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23]
3. 지도자 경력
현역에서 은퇴한 후, 쓰지 하쓰히코는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 2년 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2군 수비·주루 코치를 맡았다. 2002년부터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1군 수비·주루 코치를 2년 간 맡으면서 다네다 히토시나 이시이 다쿠로의 대기 선수였던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수비 등을 단련시켰다.[87] 하지만 팀 전체적으로 실책 수가 큰 폭으로 늘면서 2년 연속 최하위로 떨어지는 등의 침체를 겪었다. 2004년에는 요코하마 2군 타격 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부터는 TV 사이타마, NHK-BS의 야구 해설자 및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를 맡았다.
2006년에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내야 수비·주루 코치(3루 베이스 코치)를 맡았다. 대회 기간 중에는 펑고 훈련 뿐만 아니라 타격 투수 등도 했다.[88]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수비가 인상에 남은 유격수로서 박진만을 꼽았다.[89]
2006년 11월 1일에 주니치 드래건스 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 2007년에는 부임 1년 차에 웨스턴 리그 우승과 팜 일본 선수권 제패를 이뤘고, 9월 29일에 열린 팜 일본 선수권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2008년에는 팀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2009년 시즌에서는 야마모토 마사, 이노우에 가즈키 등과 같은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과 1군에서 많이 경험한 젊은 선수들의 활약도 있어 2년 만에 웨스턴 리그와 팜 일본 선수권을 제패했다.
2010년에는 1군 종합 코치로 이동하여 모리 시게카즈 수석 코치와 함께 야수 부문의 수석 코치격으로서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을 지원했다. 2011년 시즌 도중부터는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인 도마시노 세이지를 대신해서 3루 베이스 코치도 담당했다.[90] 2011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에 의해서 주니치를 퇴단했다.
2012년부터는 TV 사이타마, NHK-BS의 야구 해설자를 맡았고, 2013년에는 BS FOX(FOX SPORTS 재팬)의 해설자로서도 출연했다. 2013년 10월 22일에는 2014년 시즌부터 1군 내야 수비·주루 코치로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복귀했다는 사실이 발표됐다.[91]
2015년에는 1군 야수 종합 코치로 직함이 변경됐지만 팀은 5위를 기록하며 침체됐고 실책은 12개 구단 가운데 최다인 94개를 기록해 홈구장이 인공잔디로 꾸민 나고야 돔으로 옮기고 난 이후 최다 실책이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92] 이듬해 2016년에는 2군 야수 종합 겸 내야 수비 코치로 이동됐고 시즌 중인 8월 9일에 다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남에 따라 감독 대행이 된 모리 시게카즈를 지원하기 위해 수석 코치격인 1군 작전 겸 내야 수비 코치로 보직 이동됐다.
=== 세이부 감독 시절 ===
2016년 시즌 종료 후, 선수 시절 친정팀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으로 취임하여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바바 도시후미를 초빙했다.[93] 2017년에는 야마카와 호타카, 도노사키 슈타, 신인 겐다 소스케 등 젊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냈고, 선수들의 주루·수비 의식을 갖게 하는 방침이 성공하여 득점·실책 수 개선(득점: 619→690, 실책: 101→88)에 성공했다. 8월 5일에는 팀으로서는 59년 만에 13연승을 기록했다.[94] 8월까지는 3위 자리를 유지했으나 9월부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2위 경쟁에서 누르고 팀을 4년 만의 A클래스 진입에 성공하여 리그 2위(79승 3무 61패) 달성에 공헌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라쿠텐과 맞붙었지만 1승 2패로 패하면서 시즌을 마쳤다.
2018년에는 팀을 개막 후 1년간 선두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9월 30일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패함에 따라 2008년 이래 10년 만의 리그 우승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메트라이프 돔에서 열린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2위 팀이던 소프트뱅크에게서 어드밴티지를 포함한 2승 4패로 패하여 일본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날 경기 후 메트라이프 돔에서 열린 팬들과의 시즌 마지막 인사에서 “억울하다. 설마 오늘 2018년 시즌이 끝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난해의 아쉬움이 올해 성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 패배를 계기로 선수들은 힘을 모아 내년 시즌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95]
2019년에는 전년도와 대조적으로 개막 이후부터 선두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투수진의 거듭된 부진으로 우여곡절을 겪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점차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9월 11일, 최대 8.5경기차였던 소프트뱅크와의 승차를 역전, 130경기 만에 시즌 첫 선두 자리에 올랐다. 시즌에서 뒤늦게 선두 자리에 처음으로 오르게 된 것은 2001년 세이부의 129경기째를 제치는 퍼시픽 리그 기록이었다.[96] 이후 매직넘버 2로 맞이한 9월 24일, 142경기째에서 세이부의 매직넘버 대상팀인 소프트뱅크가 패하고 세이부가 승리함에 따라 2년 연속 퍼시픽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구단의 연속 우승은 1997년, 1998년의 히가시오 오사무 감독 시절 이래 21년 만의 쾌거였다.[97] 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소프트뱅크에게 전패를 당했다.
2020년에는 전년도 홈런왕 야마카와, 수위 타자 모리 도모야, 타점왕 나카무라 다케야 등 득점의 중심이 갖추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기대 이하의 부진으로 침체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몰렸다. 그래도 프로 3년차인 다이라 가이마가 팀내 마무리로 활약하여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중간 계투진의 활약에 힘입어 10월 27일 라쿠텐전에서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가장 빠른 기록인 감독 통산 300승을 달성했다.[98] 11월 8일에 2위 지바 롯데와의 맞대결에서 패하여 3위로 확정됐다.[99] 그해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파이널 스테이지만으로 개최했기 때문에[100] 팀은 2016년 이후 4년 만에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2021년에는 시즌 초반에 구리야마 다쿠미, 야마카와, 도노사키, 겐다 등 주력 선수들이 잇따라 등록이 말소됐다. 신인이던 와카바야시 가쿠토가 5월 하순까지 20도루를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으나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전력에서 이탈하여 팀 득점은 리그 5위, 팀 타율과 홈런도 리그 4위에 그쳤다. 투수진도 개막 이후부터 수호신을 맡은 마스다 다쓰시의 부진 등이 겹쳐 팀 평균자책점과 실점은 모두 리그 최하위에 그쳤다.[101] 모든 경기를 소화한 10월 26일 시점에서는 5위였지만 같은 달 30일 닛폰햄이 지바 롯데에게 승리함으로써 팀이 도코로자와로 이전한 1979년 이후 42년 만에 최하위로 마감했다.[102] 자력 우승 가능성이 사라진 10월 5일, 이번 시즌을 끝으로 쓰지의 퇴임이 유력하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103] 같은 달 26일에는 구단측이 2022년 시즌에 연임하기로 공식 발표했다.[104]
2022년 7월 6일 오릭스 버펄로스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승리하여 감독 통산 400승을 달성했다.[105] 작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 평균 자책점으로 침체돼 있던 투수진을 리그 1위인 평균 자책점을 2.76까지 끌어올리면서 작년에 최하위였던 팀도 7월엔 선두로 올라섰지만,[106] 9월에 들어서자 내리 7연패를 당하는 등 우승 경쟁에서 밀려 최종적으로 3위가 됐다.[107]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위 소프트뱅크에게 패하여 클라이맥스 시리즈 탈락이 결정된 10월 9일에 구단에서 용퇴라는 형태로 경기 전에 퇴임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108] 경기 후 감독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109]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의 감독으로 6시즌을 보낸 후, 쓰지는 2022년 10월 9일 사임했으며, 공석이 된 감독 자리는 마쓰이 가즈오가 채웠다.[1]
3. 1. 세이부 감독 시절
2016년 시즌 종료 후, 선수 시절 친정팀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으로 취임하여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바바 도시후미를 초빙했다.[93] 2017년에는 야마카와 호타카, 도노사키 슈타, 신인 겐다 소스케 등 젊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냈고, 선수들의 주루·수비 의식을 갖게 하는 방침이 성공하여 득점·실책 수 개선(득점: 619→690, 실책: 101→88)에 성공했다. 8월 5일에는 팀으로서는 59년 만에 13연승을 기록했다.[94] 8월까지는 3위 자리를 유지했으나 9월부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2위 경쟁에서 누르고 팀을 4년 만의 A클래스 진입에 성공하여 리그 2위(79승 3무 61패) 달성에 공헌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라쿠텐과 맞붙었지만 1승 2패로 패하면서 시즌을 마쳤다.2018년에는 팀을 개막 후 1년간 선두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9월 30일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패함에 따라 2008년 이래 10년 만의 리그 우승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메트라이프 돔에서 열린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2위 팀이던 소프트뱅크에게서 어드밴티지를 포함한 2승 4패로 패하여 일본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날 경기 후 메트라이프 돔에서 열린 팬들과의 시즌 마지막 인사에서 “억울하다. 설마 오늘 2018년 시즌이 끝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난해의 아쉬움이 올해 성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 패배를 계기로 선수들은 힘을 모아 내년 시즌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95]
2019년에는 전년도와 대조적으로 개막 이후부터 선두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투수진의 거듭된 부진으로 우여곡절을 겪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점차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9월 11일, 최대 8.5경기차였던 소프트뱅크와의 승차를 역전, 130경기 만에 시즌 첫 선두 자리에 올랐다. 시즌에서 뒤늦게 선두 자리에 처음으로 오르게 된 것은 2001년 세이부의 129경기째를 제치는 퍼시픽 리그 기록이었다.[96] 이후 매직넘버 2로 맞이한 9월 24일, 142경기째에서 세이부의 매직넘버 대상팀인 소프트뱅크가 패하고 세이부가 승리함에 따라 2년 연속 퍼시픽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구단의 연속 우승은 1997년, 1998년의 히가시오 오사무 감독 시절 이래 21년 만의 쾌거였다.[97] 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소프트뱅크에게 전패를 당했다.
2020년에는 전년도 홈런왕 야마카와, 수위 타자 모리 도모야, 타점왕 나카무라 다케야 등 득점의 중심이 갖추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기대 이하의 부진으로 침체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몰렸다. 그래도 프로 3년차인 다이라 가이마가 팀내 마무리로 활약하여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중간 계투진의 활약에 힘입어 10월 27일 라쿠텐전에서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가장 빠른 기록인 감독 통산 300승을 달성했다.[98] 11월 8일에 2위 지바 롯데와의 맞대결에서 패하여 3위로 확정됐다.[99] 그해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파이널 스테이지만으로 개최했기 때문에[100] 팀은 2016년 이후 4년 만에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2021년에는 시즌 초반에 구리야마 다쿠미, 야마카와, 도노사키, 겐다 등 주력 선수들이 잇따라 등록이 말소됐다. 신인이던 와카바야시 가쿠토가 5월 하순까지 20도루를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으나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전력에서 이탈하여 팀 득점은 리그 5위, 팀 타율과 홈런도 리그 4위에 그쳤다. 투수진도 개막 이후부터 수호신을 맡은 마스다 다쓰시의 부진 등이 겹쳐 팀 평균자책점과 실점은 모두 리그 최하위에 그쳤다.[101] 모든 경기를 소화한 10월 26일 시점에서는 5위였지만 같은 달 30일 닛폰햄이 지바 롯데에게 승리함으로써 팀이 도코로자와로 이전한 1979년 이후 42년 만에 최하위로 마감했다.[102] 자력 우승 가능성이 사라진 10월 5일, 이번 시즌을 끝으로 쓰지의 퇴임이 유력하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103] 같은 달 26일에는 구단측이 2022년 시즌에 연임하기로 공식 발표했다.[104]
2022년 7월 6일 오릭스 버펄로스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승리하여 감독 통산 400승을 달성했다.[105] 작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 평균 자책점으로 침체돼 있던 투수진을 리그 1위인 평균 자책점을 2.76까지 끌어올리면서 작년에 최하위였던 팀도 7월엔 선두로 올라섰지만,[106] 9월에 들어서자 내리 7연패를 당하는 등 우승 경쟁에서 밀려 최종적으로 3위가 됐다.[107]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위 소프트뱅크에게 패하여 클라이맥스 시리즈 탈락이 결정된 10월 9일에 구단에서 용퇴라는 형태로 경기 전에 퇴임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108] 경기 후 감독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109]
4. 감독 퇴임 후
2023년부터 TV 사이타마·TV 아사히(주로 BS아사히에 의한 세이부전이며, 일부 경기는 간토 지역 로컬의 지상파에서도 방송)·세이부 구단 제작 중계·BS 후지·닛폰 TV(게스트)·분카 방송(게스트로 취급하면서 세이부가 관여하지 않은 경기를 포함한 원정팀 지역국으로의 전송도 담당)의 야구 해설자와 스포츠 닛폰의 야구 평론가로서 활동을 재개했다.[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 퇴임 후, 쓰지는 2005년부터 TV 사이타마·NHK·BS의 야구 해설가 및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를 맡았다. 2012년부터는 다시 TV 사이타마 및 NHK·BS의 해설을 담당했고, 2013년부터는 BS FOX(FOX SPORTS 재팬)의 해설자로도 출연했다.
2006년에는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내야 수비·주루 코치(3루 베이스 코치)를 맡아 노크 뿐만 아니라 타격 투수 등도 했다.[25] 같은 대회에서 수비가 인상적이었던 유격수로 박진만의 이름을 들었다.[26]
5. 플레이 스타일
5. 1. 타격
사회인 야구 시절에는 4번 타자를 맡았지만 세이부에서는 ‘AKD포’ (아키야마 고지, 기요하라 가즈히로,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의 곁을 지키는 조연역(1980년대는 주로 9번, 1990년대에 들어서는 주로 1번)을 맡아 수위 타자도 달성했다.1kg이 넘는 무거운 방망이를 짧게 잡고, 마음 내키는대로 공을 때려내는 타입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110] 실제 야쿠르트에서 활약할 당시 감독이던 노무라 가쓰야로부터 노리는 공을 얻어내는 방법이나 볼카운트에 따른 대처법 등 머리를 써야하는 부분을 미팅에서 전달받았지만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걸 그대로 말했다가 ‘너한테는 필요도 없겠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111]
번트는 서툴렀고, 번트 대신 인코스에서도 오른쪽 방향으로 땅볼을 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했다.[112]
현역 시절, “퍼시픽 리그의 투수는 2, 3선발도 구위가 좋은데 비해 센트럴 리그 투수는 변화구 위주로 낮게 던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경향에 관해서는 당시 센트럴 리그 쪽의 구장이 좁고 홈런이 쉽게 나왔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분석했다.[113]
5. 2. 수비
쓰지 하쓰히코는 2루수로서 역대 최다인 8차례의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으며,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114] 수비할 때는 투수가 맞춰 잡은 타구를 안타로 허용하지 않고 확실히 아웃을 처리하는 것이 야수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여[114] 기본적으로는 자세를 낮춰 수비를 했다.[87] 앞쪽으로 굴러오는 땅볼에 달려들어 처리하는 것은 3루수 시절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87] 땅볼에 대해서는 ‘어쨌든 앞서서 잡으러 간다’라는 자세를 가졌으며, 그 이유는 ‘볼이 바운드 되는 횟수가 줄어드는 만큼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날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극단적인 포지셔닝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타자의 타구 경향이나 포수의 사인에서 항상 타구의 방향을 예측하고 있었다.[114] 전성기에는 공을 치기 직전에 방망이의 각도로부터 타구 방향을 판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114] 어깨는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빠른 움직임과 판단력으로 이를 커버했다.
2루수라는 포지션은 송구 방향이 좌우로 걸쳐지고, 도루 시에는 타이밍을 정확히 응시하고 베이스에 들어가며, 외야수의 수비 위치에 따라 타구를 쫓는 범위가 달라지는 등 높은 집중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114] 내야의 의사소통을 위해 2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고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여[115]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유격수로 미야모토 신야와 나라하라 히로시 등을 꼽았다.[116] 현역 시절 중요시된 사인 도둑질에 대해선 곤도 아키히토에게서 기술을 배워 플레이 도중에 수비 위치로 자기 팀에게 알리곤 했다.[110] 쓰지와 이시게가 함께 만들어내는 6-4-3, 4-6-3의 더블 플레이는 분카 방송의 《라이온스 나이터》에서는 ‘'''핫짱 더블'''’(はっちゃんダブル일본어)이라고 묘사했다.
선수의 눈으로 본 가장 좋은 구장으로서 당시 내야가 흙이었던 그린 스타디움 고베를 꼽았다.[117] 흙바닥의 내야에서는 2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날라온 타구에 대해 오른발을 미끌리며 감속하면서 정면에서 잡히지만 인공잔디에서는 스파이크가 멈춰버리기 때문에 가능한 한 앞에서 스탭으로 잡는다던가 역스탭으로 포구하는 기회가 늘어났다고 한다.[118]
글러브 제작은 쿠보타 운동구점의 에가시라 시게토시에게 의뢰했으며, 손바닥 부분은 보통보다 상당히 얇게 만들었다.[57] 포구면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새끼손가락 힌지 부분에 3개의 끈을 넣는 독특한 끈 꿰기는 "쓰지토지"라고 불린다.
6. 개인적인 평가
6. 1. 선수로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의 세이부 라이온스 황금 시대에 걸쳐 이시게 히로미치와 함께 철벽 수비를 가능케 해준 상징적 선수이다.[110] 노무라 가쓰야는 과거 현재를 포함한 일본 프로 야구에 있어서의 베스트 나인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유명한 대선수를 제치고 쓰지를 주전 2루수로 꼽았다.[110] 치바 시게루는 수비가 능숙하고 사인을 가로채는 빠른 발의 분위기 메이커이며 ‘최고의 프로 성향의 일꾼’이라고 평가했다.[110]6. 2. 감독으로서
세이부 라이온스가 3년 연속 B클래스(4위~6위)로 침체된 와중에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부임 1년 만에 팀을 2위로 끌어올렸고 2018년, 2019년에는 리그 우승 및 연패를 이뤄냈다. 단, 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패하여 일본 시리즈 출전 경험은 거의 없다.[122] 6년 간 5차례의 A클래스로 팀을 이끌었다.잔기술을 특기로 삼았던 자신의 현역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아키야마 쇼고, 아사무라 히데토, 구리야마 다쿠미, 나카무라 다케야, 야마카와 호타카, 모리 도모야, 도노사키 슈타 등 간판 타자가 즐비한 타선을 전면에 내세워 어쨌든 이기는 야구를 지향했다.[123]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퇴단 이후 고정되지 않은 유격수로 당시 신인이었던 겐다 소스케를 발탁했다. 겐다는 토요타 자동차 시절부터 수비에는 정평이 나 있었지만 타선에서는 9번을 맡아 한결같이 반대 방향으로 치라는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쓰지 하쓰히코는 스스로 ‘끌어당기는’ 기술을 가르쳐[124] 1년 간 끈기있게 지속적으로 기용한 끝에 겐다는 신인 유격수로선 처음으로 풀이닝 출전을 이뤄내며 퍼시픽 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125] 그 후 겐다는 수년 간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높은 타격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포수로서 수비에 어려움[126]을 겪고 있던 모리 도모야를 계속 기용해 나갔다. 모리는 2018년에 다와타 신사부로, 2019년에 마스다와 함께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127][128]하여 마찬가지로 2019년에는 포수로서는 네 번째로 수위 타자를 차지했다.[129]
드래프트 3위로 입단했는데도 2년 간 유격수로서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던 도노사키 슈타를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주로 외야나 2·3루에서 적극적으로 기용했다.[130] 도노사키는 이후 2017년부터 3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2019년에는 26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리그 연패 달성에 기여했다.
한편 부임 2년차 이후에는 4년 연속으로 팀 평균 자책점이 최하위에 그칠 정도로 투수진을 정비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지만[131]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시즌인 2022년에는 코치진과 함께 투수진을 다시 재건하여 리그 1위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다.
‘감독은 특별한 존재다’ 라고 생각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코치같은 감독이고 싶다고 자신의 ‘감독상’을 밝힌 적이 있다.[132] 선수와의 소통을 중요시하며 훈련할 때는 젊은 선수들과 농담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 경기에 들어서면 뜨거워져서 선수들과 함께 싸우는 동지로 여기며 생각하고 있다.[133]
7. 에피소드
별명은 '''하쓰'''(하쓰/ハツ일본어), '''핫짱'''(핫짱/はっちゃん일본어)이다.[134] 파친코 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쓰지 야스시는 장남이다.[135][136]
8. 상세 정보
'''쓰지 하쓰히코'''(つじ はつひこ/辻 発彦일본어, 1958년 10월 24일 ~ )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야구 해설가·평론가이다. 현재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의 1군 육성 총괄이다.
사가현 고조시 출신으로, 닛폰 통운을 거쳐 1984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1995년까지 활동했다. 1993년에는 타율 '''0.319'''(1위)를 기록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활동했다.
== 상세 정보 ==
=== 출신 학교 ===
사가 현립 사가히가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선수 경력 ===
연도 | 팀 | 등번호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도루 | SF | BB+HBP | SO | 타율(순위) |
---|---|---|---|---|---|---|---|---|---|---|---|---|---|---|---|---|
1984 | 세이부 | 5 | 41 | 91 | 13 | 19 | 5 | 0 | 3 | 10 | 2 | 6 | 0 | 11 | 13 | .209 |
1985 | 110 | 251 | 45 | 69 | 11 | 4 | 5 | 35 | 27 | 15 | 5 | 39 | 26 | .275 | ||
1986 | 130 | 425 | 65 | 126 | 19 | 5 | 7 | 57 | 35 | 23 | 5 | 44 | 63 | .296 (13) | ||
1987 | 51 | 125 | 9 | 25 | 5 | 1 | 2 | 9 | 10 | 4 | 0 | 7 | 21 | .200 | ||
1988 | 130 | 419 | 45 | 110 | 19 | 1 | 3 | 39 | 13 | 9 | 1 | 31 | 51 | .263 (23) | ||
1989 | 130 | 437 | 58 | 133 | 12 | 5 | 3 | 52 | 33 | 9 | 5 | 39 | 33 | .304 (7) | ||
1990 | 130 | 421 | 59 | 112 | 17 | 2 | 3 | 39 | 31 | 22 | 2 | 53 | 38 | .266 (22) | ||
1991 | 129 | 498 | 61 | 135 | 27 | 2 | 8 | 43 | 16 | 20 | 2 | 51 | 48 | .271 (14) | ||
1992 | 123 | 474 | 66 | 135 | 23 | 4 | 6 | 48 | 23 | 11 | 1 | 67 | 38 | .285 (14) | ||
1993 | 110 | 429 | 68 | 137 | 26 | 5 | 3 | 31 | 14 | 10 | 5 | 57 | 37 | .319 (1) | ||
1994 | 105 | 412 | 63 | 121 | 21 | 1 | 4 | 45 | 9 | 2 | 5 | 39 | 51 | .294 (8) | ||
1995 | 107 | 307 | 31 | 73 | 8 | 2 | 2 | 20 | 7 | 13 | 1 | 49 | 30 | .238 | ||
1996 | 야쿠르트 | 8 | 103 | 400 | 59 | 133 | 9 | 2 | 2 | 41 | 9 | 1 | 2 | 53 | 46 | .333 (2) |
1997 | 85 | 279 | 33 | 73 | 10 | 1 | 2 | 18 | 6 | 6 | 1 | 22 | 37 | .262 | ||
1998 | 61 | 168 | 20 | 51 | 5 | 0 | 3 | 18 | 6 | 0 | 2 | 12 | 17 | .304 | ||
1999 | 17 | 51 | 4 | 10 | 0 | 0 | 0 | 5 | 1 | 1 | 0 | 6 | 7 | .196 | ||
통산 | 1562 | 5187 | 699 | 1462 | 217 | 35 | 56 | 510 | 242 | 152 | 37 | 580 | 556 | .282 |
=== 지도자 경력 ===
현역에서 은퇴한 후 2000년부터 2년 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2군 수비·주루 코치를 맡았다. 2002년부터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1군 수비·주루 코치를 2년 간 맡으면서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수비 등을 길러냈다.[87] 하지만 팀 전체적으로 실책 수가 큰 폭으로 늘면서 2년 연속 최하위로 떨어지는 등의 침체를 겪었다. 2004년에는 요코하마 2군 타격 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부터는 TV 사이타마, NHK-BS의 야구 해설자 및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를 맡았다.
2006년에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내야 수비·주루 코치(3루 베이스 코치)를 맡았다. 대회 기간 중에는 펑고 훈련 뿐만 아니라 타격 투수 등도 했다.[88]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수비가 인상에 남은 유격수로서 박진만을 꼽았다.[89]
11월 1일에 주니치 드래건스 2군 감독으로 취임하여 2007년에는 부임 1년 차에 웨스턴 리그 우승과 팜 일본 선수권 제패를 이뤘고, 9월 29일에 열린 팜 일본 선수권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2008년에는 팀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2009년 시즌에서는 야마모토 마사, 이노우에 가즈키 등과 같은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과 1군에서 많이 경험한 젊은 선수들의 활약도 있어 2년 만에 웨스턴 리그와 팜 일본 선수권을 제패했다.
2010년에는 1군 종합 코치로 이동하여 모리 시게카즈 수석 코치와 함께 야수 부문의 수석 코치격으로서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을 지원했다. 2011년 시즌 도중부터는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인 도마시노 세이지를 대신해서 3루 베이스 코치도 담당했다.[90] 2011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에 의해서 주니치를 퇴단했다.
2012년부터는 TV 사이타마, NHK-BS의 야구 해설자를 맡았고, 2013년에는 BS FOX(FOX SPORTS 재팬)의 해설자로서도 출연했다. 2013년 10월 22일에는 2014년 시즌부터 1군 내야 수비·주루 코치로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복귀했다는 사실이 발표됐다.[91]
2015년에는 1군 야수 종합 코치로 직함이 변경됐지만 팀은 5위를 기록하며 침체됐고 실책은 12개 구단 가운데 최다인 94개를 기록해 홈구장이 인공잔디로 꾸민 나고야 돔으로 옮기고 난 이후 최다 실책이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92] 이듬해 2016년에는 2군 야수 종합 겸 내야 수비 코치로 이동됐고 시즌 중인 8월 9일에 다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남에 따라 감독 대행이 된 모리 시게카즈를 지원하기 위해 수석 코치격인 1군 작전 겸 내야 수비 코치로 보직 이동됐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을 역임했다.
; 정규 시즌
년 도 | 구 단 | 순 위 | 시 합 | 승 리 | 패 전 | 무 승 부 | 승 률 | 게 임 차 | 타 율 | 홈 런 | 방 어 율 | 나 이 |
---|---|---|---|---|---|---|---|---|---|---|---|---|
2017 | 세이부 | 2위 | 143 | 79 | 61 | 3 | .564 | 13.5 | .264 | 153 | 3.53 | 58세 |
2018 | 1위 | 143 | 88 | 53 | 2 | .624 | 0.0 | .273 | 196 | 4.24 | 59세 | |
2019 | 1위 | 143 | 80 | 62 | 1 | .562 | 0.0 | .265 | 174 | 4.35 | 60세 | |
2020 | 3위 | 120 | 58 | 58 | 4 | .500 | 15.5 | .238 | 107 | 4.28 | 61세 | |
2021 | 6위 | 143 | 55 | 70 | 18 | .440 | 15.0 | .239 | 112 | 3.94 | 62세 | |
2022 | 3위 | 143 | 72 | 68 | 3 | .514 | 3.5 | .229 | 118 | 2.75 | 63세 | |
통산: 6년 | 835 | 432 | 372 | 31 | .537 | A클래스: 5회, B클래스: 1회 |
; 포스트 시즌
년 도 | 구 단 | 대 회 명 | 상 대 | 승 패 |
---|---|---|---|---|
2017 | 세이부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도호쿠 라쿠텐 골든 이글스 (퍼시픽 리그 3위) | 1승 2패=패퇴 |
2018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1)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퍼시픽 리그 2위) | 2승 4패=패퇴(※2) | |
2019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1)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퍼시픽 리그 2위) | 1승 4패=패퇴(※2) | |
2022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퍼시픽 리그 2위) | 0승 2패=패퇴 |
- 승패의 '''굵은 글씨'''는 승리한 시리즈
: ※1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는 6경기제로 먼저 4승을 올린 팀의 우승, 리그 우승 팀에 1승 어드밴티지
: ※2 어드밴티지의 1승을 포함.
=== 수상·타이틀 경력 ===
- 수위 타자: 1회(1993년)
- 최고 출루율: 1회(1993년)
- 베스트 나인: 5회(1986년, 1989년, 1991년 ~ 1993년) ※2루수 부문
- 골든 글러브상: 8회(1986년, 1988년 ~ 1994년) ※2루수 부문이며, 해당 부문에서의 8회 수상은 기쿠치 료스케에 이은 역대 2위, 퍼시픽 리그 최다 기록. 7년 연속 수상도 역대 2위, 퍼시픽 리그 최장 기록
- 월간 MVP: 1회(1993년 8월) ※야수 부문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2회(1990년, 1994년)
- 퍼시픽 리그 최우수 감독상: 2회(2018년, 2019년)
- NPB 올스타 출전: 9회(1986년, 1988년–1994년, 1996년)
=== 개인 기록 ===
; 첫 기록
- 첫 출장 : 1984년 4월 3일, 대 롯데 오리온스 1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1회초에 마쓰누마 마사유키(정찰 요원)를 대신해 3루수로서 출장, 2타수 무안타(투수: 스티븐 셜리/Steven Shirley영어)
- 첫 선발 출장 : 1984년 4월 26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6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9번·유격수로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타점 : 상동, 4회초에 나가모토 히로아키로부터 우전 적시타
- 첫 도루 : 상동, 4회초에 2루 안착(투수 : 나가모토 히로아키, 포수 : 후지타 히로마사)
- 첫 홈런 : 1984년 5월 26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11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4회초에 미야모토 시로로부터 2점 홈런
; 주요 기록
- 1000경기 출장: 1993년 6월 2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9차전 (후쿠오카 돔), 1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310번째
- 1000안타: 1993년 10월 5일, 긴테츠 버팔로즈 23차전 (후지이데라 구장), 4회에 에사카 마사아키로부터 투수 강습 안타 ※역대 171번째
- 1500경기 출장: 1998년 6월 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10차전 (이와테 현영 야구장), 2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122번째
; 기타 기록
- 올스타전 출장 : 9회(1986년, 1988년 ~ 1994년, 1996년)
=== 등번호 ===
- '''5'''(1984년 ~ 1995년)
- '''8'''(1996년 ~ 1999년)
- '''84'''(2000년 ~ 2001년)
- '''85'''(2002년 ~ 2004년, 2007년 ~ 2011년, 2014년 ~ 2022년)
- '''71'''(2024년 ~ )
8. 1. 출신 학교
사가 현립 사가히가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8. 2. 선수 경력
쓰지 하쓰히코는 닛폰 통운을 거쳐 1984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1995년까지 활동했다. 1993년에는 타율 '''0.319'''(1위)를 기록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활동했다.연도 | 팀 | 등번호 | G | AB | R | H | 2B | 3B | HR | RBI | SB | 도루 | SF | BB+HBP | SO | 타율(순위) |
---|---|---|---|---|---|---|---|---|---|---|---|---|---|---|---|---|
1984 | 세이부 | 5 | 41 | 91 | 13 | 19 | 5 | 0 | 3 | 10 | 2 | 6 | 0 | 11 | 13 | .209 |
1985 | 110 | 251 | 45 | 69 | 11 | 4 | 5 | 35 | 27 | 15 | 5 | 39 | 26 | .275 | ||
1986 | 130 | 425 | 65 | 126 | 19 | 5 | 7 | 57 | 35 | 23 | 5 | 44 | 63 | .296 (13) | ||
1987 | 51 | 125 | 9 | 25 | 5 | 1 | 2 | 9 | 10 | 4 | 0 | 7 | 21 | .200 | ||
1988 | 130 | 419 | 45 | 110 | 19 | 1 | 3 | 39 | 13 | 9 | 1 | 31 | 51 | .263 (23) | ||
1989 | 130 | 437 | 58 | 133 | 12 | 5 | 3 | 52 | 33 | 9 | 5 | 39 | 33 | .304 (7) | ||
1990 | 130 | 421 | 59 | 112 | 17 | 2 | 3 | 39 | 31 | 22 | 2 | 53 | 38 | .266 (22) | ||
1991 | 129 | 498 | 61 | 135 | 27 | 2 | 8 | 43 | 16 | 20 | 2 | 51 | 48 | .271 (14) | ||
1992 | 123 | 474 | 66 | 135 | 23 | 4 | 6 | 48 | 23 | 11 | 1 | 67 | 38 | .285 (14) | ||
1993 | 110 | 429 | 68 | 137 | 26 | 5 | 3 | 31 | 14 | 10 | 5 | 57 | 37 | .319 (1) | ||
1994 | 105 | 412 | 63 | 121 | 21 | 1 | 4 | 45 | 9 | 2 | 5 | 39 | 51 | .294 (8) | ||
1995 | 107 | 307 | 31 | 73 | 8 | 2 | 2 | 20 | 7 | 13 | 1 | 49 | 30 | .238 | ||
1996 | 야쿠르트 | 8 | 103 | 400 | 59 | 133 | 9 | 2 | 2 | 41 | 9 | 1 | 2 | 53 | 46 | .333 (2) |
1997 | 85 | 279 | 33 | 73 | 10 | 1 | 2 | 18 | 6 | 6 | 1 | 22 | 37 | .262 | ||
1998 | 61 | 168 | 20 | 51 | 5 | 0 | 3 | 18 | 6 | 0 | 2 | 12 | 17 | .304 | ||
1999 | 17 | 51 | 4 | 10 | 0 | 0 | 0 | 5 | 1 | 1 | 0 | 6 | 7 | .196 | ||
통산 | 1562 | 5187 | 699 | 1462 | 217 | 35 | 56 | 510 | 242 | 152 | 37 | 580 | 556 | .282 |
8. 3. 지도자 경력
현역에서 은퇴한 후 2000년부터 2년 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2군 수비·주루 코치를 맡았다. 2002년부터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1군 수비·주루 코치를 2년 간 맡으면서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수비 등을 길러냈다.[87] 하지만 팀 전체적으로 실책 수가 큰 폭으로 늘면서 2년 연속 최하위로 떨어지는 등의 침체를 겪었다. 2004년에는 요코하마 2군 타격 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부터는 TV 사이타마, NHK-BS의 야구 해설자 및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를 맡았다.2006년에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내야 수비·주루 코치(3루 베이스 코치)를 맡았다. 대회 기간 중에는 펑고 훈련 뿐만 아니라 타격 투수 등도 했다.[88]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수비가 인상에 남은 유격수로서 박진만을 꼽았다.[89]
11월 1일에 주니치 드래건스 2군 감독으로 취임하여 2007년에는 부임 1년 차에 웨스턴 리그 우승과 팜 일본 선수권 제패를 이뤘고, 9월 29일에 열린 팜 일본 선수권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2008년에는 팀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2009년 시즌에서는 야마모토 마사, 이노우에 가즈키 등과 같은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과 1군에서 많이 경험한 젊은 선수들의 활약도 있어 2년 만에 웨스턴 리그와 팜 일본 선수권을 제패했다.
2010년에는 1군 종합 코치로 이동하여 모리 시게카즈 수석 코치와 함께 야수 부문의 수석 코치격으로서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을 지원했다. 2011년 시즌 도중부터는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인 도마시노 세이지를 대신해서 3루 베이스 코치도 담당했다.[90] 2011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에 의해서 주니치를 퇴단했다.
2012년부터는 TV 사이타마, NHK-BS의 야구 해설자를 맡았고, 2013년에는 BS FOX(FOX SPORTS 재팬)의 해설자로서도 출연했다. 2013년 10월 22일에는 2014년 시즌부터 1군 내야 수비·주루 코치로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복귀했다는 사실이 발표됐다.[91]
2015년에는 1군 야수 종합 코치로 직함이 변경됐지만 팀은 5위를 기록하며 침체됐고 실책은 12개 구단 가운데 최다인 94개를 기록해 홈구장이 인공잔디로 꾸민 나고야 돔으로 옮기고 난 이후 최다 실책이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92] 이듬해 2016년에는 2군 야수 종합 겸 내야 수비 코치로 이동됐고 시즌 중인 8월 9일에 다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남에 따라 감독 대행이 된 모리 시게카즈를 지원하기 위해 수석 코치격인 1군 작전 겸 내야 수비 코치로 보직 이동됐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을 역임했다.
; 정규 시즌
년 도 | 구 단 | 순 위 | 시 합 | 승 리 | 패 전 | 무 승 부 | 승 률 | 게 임 차 | 타 율 | 홈 런 | 방 어 율 | 나 이 |
---|---|---|---|---|---|---|---|---|---|---|---|---|
2017 | 세이부 | 2위 | 143 | 79 | 61 | 3 | .564 | 13.5 | .264 | 153 | 3.53 | 58세 |
2018 | 1위 | 143 | 88 | 53 | 2 | .624 | 0.0 | .273 | 196 | 4.24 | 59세 | |
2019 | 1위 | 143 | 80 | 62 | 1 | .562 | 0.0 | .265 | 174 | 4.35 | 60세 | |
2020 | 3위 | 120 | 58 | 58 | 4 | .500 | 15.5 | .238 | 107 | 4.28 | 61세 | |
2021 | 6위 | 143 | 55 | 70 | 18 | .440 | 15.0 | .239 | 112 | 3.94 | 62세 | |
2022 | 3위 | 143 | 72 | 68 | 3 | .514 | 3.5 | .229 | 118 | 2.75 | 63세 | |
통산: 6년 | 835 | 432 | 372 | 31 | .537 | A클래스: 5회, B클래스: 1회 |
; 포스트 시즌
년 도 | 구 단 | 대 회 명 | 상 대 | 승 패 |
---|---|---|---|---|
2017 | 세이부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도호쿠 라쿠텐 골든 이글스 (퍼시픽 리그 3위) | 1승 2패=패퇴 |
2018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1)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퍼시픽 리그 2위) | 2승 4패=패퇴(※2) | |
2019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1)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퍼시픽 리그 2위) | 1승 4패=패퇴(※2) | |
2022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퍼시픽 리그 2위) | 0승 2패=패퇴 |
- 승패의 '''굵은 글씨'''는 승리한 시리즈
: ※1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는 6경기제로 먼저 4승을 올린 팀의 우승, 리그 우승 팀에 1승 어드밴티지
: ※2 어드밴티지의 1승을 포함.
8. 4. 수상·타이틀 경력
- 수위 타자: 1회(1993년)
- 최고 출루율: 1회(1993년)
- 베스트 나인: 5회(1986년, 1989년, 1991년 ~ 1993년) ※2루수 부문
- 골든 글러브상: 8회(1986년, 1988년 ~ 1994년) ※2루수 부문이며, 해당 부문에서의 8회 수상은 기쿠치 료스케에 이은 역대 2위, 퍼시픽 리그 최다 기록. 7년 연속 수상도 역대 2위, 퍼시픽 리그 최장 기록
- 월간 MVP: 1회(1993년 8월) ※야수 부문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2회(1990년, 1994년)
- 퍼시픽 리그 최우수 감독상: 2회(2018년, 2019년)
- NPB 올스타 출전: 9회(1986년, 1988년–1994년, 1996년)
8. 4. 1. 타이틀
- 수위 타자 : 1회(1993년)
- 최고 출루율 : 1회(1993년)
- 타격왕: 1회 (1993년)
- 출루율 챔피언: 1회 (1993년)
- 미쓰이 골든 글러브 상: 8회 (1996년, 1988년–1994년)
- 베스트 나인 상: 5회 (1986년, 1989년, 1991년–1993년)
- NPB 올스타 출전: 9회 (1986년, 1988년–1994년, 1996년)
8. 4. 2. 수상
- 베스트 나인 : 5회(1986년, 1989년, 1991년 ~ 1993년) ※2루수 부문
- 골든 글러브상 : 8회(1986년, 1988년 ~ 1994년) ※2루수 부문이며, 해당 부문에서의 8회 수상은 기쿠치 료스케에 이은 역대 2위, 퍼시픽 리그 최다 기록이다. 7년 연속 수상도 역대 2위, 퍼시픽 리그 최장 기록
- 월간 MVP : 1회(1993년 8월) ※야수 부문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 2회(1990년, 1994년)
- 퍼시픽 리그 최우수 감독상 : 2회(2018년, 2019년)
- 타격왕: 1회 (1993)
- 출루율 챔피언: 1회 (1993)
- NPB 올스타 출전: 9회 (1986, 1988–1994, 1996)
8. 5. 개인 기록
- 타격왕: 1회 (1993)
- 출루율 챔피언: 1회 (1993)
- 미쓰이 골든 글러브 상: 8회 (1996, 1998–1994)
- 베스트 나인 상: 5회 (1986, 1989, 1991–1993)
- NPB 올스타 출전: 9회 (1986, 1988–1994, 1996)
; 첫 기록
- 첫 출장 : 1984년 4월 3일, 대 롯데 오리온스 1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1회초에 마쓰누마 마사유키(정찰 요원)를 대신해 3루수로서 출장, 2타수 무안타(투수: 스티븐 셜리/Steven Shirley영어)
- 첫 선발 출장 : 1984년 4월 26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6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9번·유격수로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타점 : 상동, 4회초에 나가모토 히로아키로부터 우전 적시타
- 첫 도루 : 상동, 4회초에 2루 안착(투수 : 나가모토 히로아키, 포수 : 후지타 히로마사)
- 첫 홈런 : 1984년 5월 26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11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4회초에 미야모토 시로로부터 2점 홈런
; 주요 기록
- 1000경기 출장: 1993년 6월 2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9차전 (후쿠오카 돔), 1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310번째
- 1000안타: 1993년 10월 5일, 긴테츠 버팔로즈 23차전 (후지이데라 구장), 4회에 에사카 마사아키로부터 투수 강습 안타 ※역대 171번째
- 1500경기 출장: 1998년 6월 6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10차전 (이와테 현영 야구장), 2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122번째
; 기타 기록
- 올스타전 출장 : 9회(1986년, 1988년 ~ 1994년, 1996년)
8. 5. 1. 첫 기록
- 첫 출장 : 1984년 4월 3일, 대 롯데 오리온스 1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1회초에 마쓰누마 마사유키(정찰 요원)를 대신해 3루수로서 출장, 2타수 무안타(투수: 스티븐 셜리/Steven Shirley영어)
- 첫 선발 출장 : 1984년 4월 26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6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9번·유격수로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타점 : 상동, 4회초에 나가모토 히로아키로부터 우전 적시타
- 첫 도루 : 상동, 4회초에 2루 안착(투수 : 나가모토 히로아키, 포수 : 후지타 히로마사)
- 첫 홈런 : 1984년 5월 26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11차전(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4회초에 미야모토 시로로부터 2점 홈런
8. 5. 2. 기록 달성 경력
- 통산 1000경기 출장 : 1993년 6월 2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9차전(후쿠오카 돔), 1번·2루수로서 선발 출장 ※역대 310번째
- 통산 1000안타 : 1993년 10월 5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23차전(후지이데라 구장), 4회초에 에사카 마사아키로부터 투수 강습 안타 ※역대 171번째
- 통산 1500경기 출장 : 1998년 6월 6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0차전(이와테 현영 야구장), 2번·2루수로서 선발 출장 ※역대 122번째
8. 5. 3. 기타
- 올스타전 출장 : 9회(1986년, 1988년 ~ 1994년, 1996년)
8. 6. 등번호
쓰지 하쓰히코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등번호 5번을 사용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등번호 8번을 사용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등번호 84번을 사용했고, 2002년부터 2004년, 2007년부터 2011년, 그리고 2014년부터 2022년까지는 등번호 85번을 사용했다.참조
[1]
웹사이트
Baseball: Ex-major leaguer K. Matsui named as Seibu manager
https://web.archive.[...]
2023-06-28
[2]
웹사이트
Yakult Swallows Players: Hatsuhiko Tsuji
https://web.archive.[...]
2009-04-05
[3]
웹사이트
辻発彦は西武に入団してすぐバットを短く持つようになった。石毛宏典が振り返る、黄金世代の「鉄壁セカンド」が育つまで
https://sportiva.shu[...]
2022-12-21
[4]
웹사이트
オヤジおめでとう!西武・辻監督長男、ヤスシ氏が祝福メッセージ(1/2ページ)
https://www.sanspo.c[...]
2018-10-01
[5]
웹사이트
西武監督の息子はパチスロライター「家でのオヤジは…」
https://web.archive.[...]
2018-10-01
[6]
뉴스
朝日新聞
2002-01-17
[7]
웹사이트
黄金期の西武「不動の二塁手」辻発彦さん、高校時代は無名だった…農協が不採用で社会人野球のテストに合格
https://www.yomiuri.[...]
2024-09-26
[8]
서적
都市対抗野球大会60年史
日本野球連盟 毎日新聞社
1990
[9]
서적
社会人野球日本選手権大会20年史
日本野球連盟 毎日新聞社
1994
[10]
간행물
潮
1991-02
[11]
간행물
週刊ベースボール
2002-08-12
[12]
뉴스
朝日新聞
1985-11-20
[13]
뉴스
読売新聞
1986-10-17
[14]
간행물
週刊ベースボール
1988-04-11
[15]
뉴스
読売新聞
1988-12-12
[16]
간행물
週刊ベースボール
199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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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毎日新聞
1993-04-26
[18]
뉴스
読売新聞
1993-09-29
[19]
뉴스
毎日新聞
199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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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週刊ベースボー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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辻発彦コラム 第13回「引退試合」 野球コラ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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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塁ミス、落球で自滅 落合監督「不思議なゲ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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来季のスタッフ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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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ータで見る2015ペナント/12球団一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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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巣再建へ、西武・辻発彦監督 「大切なのは“アマチュア精神”なんですよ」 野球コラ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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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止まらない13連勝 58年西鉄以来59年ぶ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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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辻監督が悔し泣き「まさか今日終了する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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森が満塁一掃V打!西武、130試合目でついに首位 鷹まくった0・5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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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がリーグ優勝 パ最多23回目の頂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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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年 シーズン振り返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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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逆転劇が終幕…「しびれる所」で響いた層の薄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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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ロ野球・2020年シーズンの全日程発表 CSはセなし・パあり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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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年ぶりの最下位に沈んだ西武、投手陣の立て直しは復活への至上命題|プロ野球2021振り返り・2022展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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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が42年ぶりの最下位に… 日本ハムは3年連続5位で栗山政権に幕を下ろ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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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辻発彦監督が辞任へ 後任は松井稼頭央2軍監督が有力…リーグ優勝が消滅、CS進出は可能性残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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辻発彦「西武は最強の“アマチュア野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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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パCS初の屈辱…1位チームが4連敗 短期決戦の弱さ露呈で2年連続敗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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変えるのは選手でなく自分 辻監督にみる将の心得(写真=共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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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辻監督「1点どうぞ」の采配が生んだ好成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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増田投手・森選手「2019プロ野球最優秀バッテリー賞」受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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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外崎修汰 攻撃の選択肢を増やす貴重な存在 野球コラ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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選手をグラウンドに気分よく送り出すことが監督の仕事――辻 発彦(埼玉西武ライオンズ監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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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 이야기: 이 1권으로 구장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B.B.mook - 스포츠 시리즈(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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辻発彦は西武に入団してすぐバットを短く持つようになった。石毛宏典が振り返る、黄金世代の「鉄壁セカンド」が育つま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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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武監督の息子はパチスロライター「家でのオヤジ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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